프랑스정부가 인정한 세계 3대 조각가 한국인은

문신미술관

한국인 예술가 중 의외로 해외에서 유명하지만,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물론 해외에서 유명하다는 건 그만큼 재능이 빛을 바라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자국에 알려지지 않은 것은 조금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래서 해외에서 천재성을 인정받았던 한국인 예술가를 한 분 소개할까 합니다. 특히, 예술의 나라 프랑스에서 욕심 냈던 예술가입니다. 지금부터 함께 살펴봅니다.


프랑스 정부가 인정한 세계 3대 조각가

1992년 프랑스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조각가를 3명 선정했습니다. 영국의 헨리 무어, 미국의 알렉산더 칼더 등이 포함됐는데, 그 중 한 명이 바로 한국의 조각가였던 문신이었습니다.

프랑스 정부에서는 이들을 초대해 세계 3대 거장전을 열었고, 이들을 세계 3대 조각가로 공인했습니다.

헨리 무어의 작품은 사또 바가텔 정원, 알렉산더 칼더의 작품은 라데팡스 광장에 전시됐습니다. 그리고 문신의 작품은 1급 미술관 살 셍장에 전시됐는데, 당시 동양인의 작품이 입성이 어려웠던 점을 고려하면 문신에 대한 대우가 남달랐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귀화 요청까지 받은 한국 조각가 문신

문신이 한국을 떠나 프랑스에 머물기 시작한 것은 1961년의 일이었습니다. 이전까지는 인상파 화가로 활동했던 문신은 프랑스에서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술이 아닌 고성 복구 작업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조각가로 거듭났으며, 1970<태양의 인간>이라는 작품으로 조각가로 데뷔할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반열에 오르게 됐습니다.

특히, 프랑스가 그의 작품들을 가장 사랑했으며 1980년 프랑스 정부는 문신에게 귀화를 요청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귀국 후 직접 미술관을 지은 예술가

프랑스 정부 귀화 요청에 한국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호실장을 통해 문신의 귀국을 요청했으며, 문신 또한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귀국길을 택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고향집이 있던 마산 추산동에 다시 한 번 정착하여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으며, 자신의 마지막 과제였던 미술관 건립을 시작했습니다.

작품을 팔아 돈이 생기면 고향집 인근에 터를 다듬고 담을 올려 미술관을 지어 나갔습니다. 그렇게 1994년 마산에 문신미술관을 개관하게 됐습니다.

안타깝게도 문신은 1년 뒤인 1995년 타계하였지만, 미술관은 그의 유언에 따라 시에 기증되어 현재까지도 시민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공공미술관으로 남아 있습니다.


문신의 작품이 인정받는 이유

그렇다면 문신의 작품이 이렇게까지 인정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는 인상파 화가로 시작했지만, 조각가로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의 조각에서는 한 가지 특징을 찾아볼 수 있는데, 바로 시메트리입니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대칭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작품을 자세히 보면 완벽한 대칭이 아닌 미묘하게 다른 부분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문신은 이를 통해 자연 상태의 선천적 대칭성이 후천적 요인으로 인해 조금은 어긋난다는 걸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또한 이렇게 미묘한 대칭이 완벽한 대칭보다 더 아름답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의 얼굴이 완벽한 대칭이 아니라 미묘한 대칭이라서 자연스러운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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